분할의존성이란? ETF가 많을수록 분산투자가 잘된다는 착각

ETF를 10개쯤 가지고 있으면 왠지 꽤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ETF가 2~3개뿐이면 뭔가 부족해 보인다. 그런데 실제 위험은 ETF 개수가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자산이 얼마나 들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선택지를 어떻게 나눠 보여주느냐에 따라 판단과 배분까지 달라질 수 있는 현상을 ‘분할의존성(Partition Dependence)’이라고 한다.

이 개념을 알고 나면 포트폴리오를 볼 때 종목 수부터 세는 습관이 조금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분할의존성이란?

오늘 알아볼 개념은 무엇일까?

분할의존성이란 사람이 돈이나 선택을 여러 대상에 배분할 때 선택지가 어떤 그룹으로 나뉘어 있는지에 따라 배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1,000만 원을 투자한다고 해보자.

선택지가 이렇게 보인다.

미국주식 / 한국주식 / 채권

그러면 각각 어느 정도 나눠 투자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선택지를 이렇게 바꿔보자.

미국 성장주 / 미국 배당주 / 미국 기술주 / 한국주식 / 채권

실제 자산의 본질적인 특성이 갑자기 바뀐 것은 아니다. 그런데 미국주식이 세 가지로 세분화되면서 미국주식에 더 많은 돈을 배분하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선택지를 나누는 방식이 자산배분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런 개념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분할의존성은 의사결정 연구자인 Craig R. Fox, Rebecca K. Ratner, Daniel S. Lieb 등이 2005년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에 발표한 연구에서 체계적으로 다뤄졌다.

연구에서는 돈의 배분뿐 아니라 소비 선택과 미래 기간에 대한 선택에서도 사람들이 주어진 선택지를 어떻게 묶어 인식하느냐에 따라 배분이 달라지는 현상이 관찰됐다. 또한 관련 경험이 많거나 자신의 선호가 뚜렷한 참가자에게서는 이런 영향이 약해지는 모습도 나타났다.

같은 해 Fox와 Robert Clemen의 연구에서도 주관적인 확률을 판단할 때 사건을 어떤 범주로 나눠 제시하느냐에 따라 확률 판단이 균등배분 쪽으로 끌리는 분할의존성이 관찰됐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선택지를 있는 그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가 담겨 있는 ‘칸’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왜 사람은 이렇게 행동할까?

돈을 배분해야 하는데 정확한 답을 모르면 어떻게 할까?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적당히 나누는 것이다.

선택지가 2개라면 반반, 4개라면 25%씩 나누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한곳에 몰아넣었다는 불안도 줄여준다.

문제는 선택지의 개수와 실제 위험의 개수가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미국 대형 기술주를 많이 담고 있는 ETF 세 개를 각각 다른 상품이라고 생각해 10%씩 투자했다면 겉으로는 세 곳에 분산했다.

하지만 세 ETF가 비슷한 기업과 산업에 집중돼 있다면 실제 경제적 노출은 상당 부분 겹칠 수 있다.

ETF 세 개를 샀다고 위험도 세 갈래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돈과 투자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특히 ETF 투자에서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예를 들어 미국 S&P500 ETF, 미국 나스닥100 ETF, 미국 대형 성장주 ETF, 미국 반도체 ETF를 각각 가지고 있다고 해보자.

상품명은 네 개다.

운용사도 다를 수 있다.

추종지수도 다르다.

그래서 포트폴리오 화면만 보면 상당히 다양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 구성 종목을 펼쳐보면 일부 대형 기술기업의 비중이 여러 ETF에서 반복될 수 있다.

이 경우 ETF 개수는 네 개지만 실질적인 자산 노출은 생각보다 특정 시장·산업·기업에 집중될 수 있다.

반대로 주식 ETF 하나와 채권 ETF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투자 목적과 비중에 따라서는 서로 다른 위험요인에 노출된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

결국 분산투자에서 중요한 질문은

“ETF를 몇 개 가지고 있나?”

가 아니다.

“내 돈이 실제로 어디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나?”

에 더 가깝다.

숫자로 보면 더 이해하기 쉽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투자금 1,000만 원을 배분한다고 가정한다.

처음 선택지는 두 개다.

선택지단순 균등배분
주식500만 원
채권500만 원

그런데 투자 앱에서 주식을 세 가지로 나눠 보여준다고 생각해보자.

선택지단순 균등배분
미국 성장주250만 원
미국 배당주250만 원
한국주식250만 원
채권250만 원

똑같은 1,000만 원인데 주식과 채권이라는 두 자산군으로 보면 50:50이었던 포트폴리오가 선택지를 세분화한 뒤에는 주식 75%, 채권 25%가 된다.

물론 실제 투자자는 반드시 이렇게 배분한다는 뜻이 아니다.

분할의존성 연구가 알려주는 것은 선택지를 어떻게 구성하고 보여주느냐가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왜 문제가 될까?

가장 큰 문제는 분산한 것처럼 보이면서 실제로는 집중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ETF를 10개 가지고 있어도 모두 미국 대형 성장주와 기술주 비중이 높다면 시장이 특정 방향으로 움직일 때 비슷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자산의 이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일정 금액씩 나누다 보면 자신의 투자목적과 상관없는 자산까지 추가할 수도 있다.

“분산해야 하니까 하나 더.”

이런 식으로 ETF가 계속 늘어나면 어느 순간 포트폴리오가 복잡해진다.

복잡한 포트폴리오가 반드시 좋은 포트폴리오는 아니다.

분산투자의 목적은 상품 개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특정 위험 하나가 전체 자산을 지나치게 흔들지 않도록 만드는 것에 있다.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ETF 이름을 잠시 잊고 기초자산 기준으로 다시 묶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계좌의 ETF를 미국주식, 한국주식, 채권, 금·원자재, 현금성 자산처럼 큰 자산군으로 먼저 나눠본다.

그다음 주식 안에서도 성장주, 가치주, 배당주, 대형주, 중소형주처럼 겹치는 부분을 확인한다.

ETF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면 상위 편입종목도 한번 비교해보는 것이 좋다.

특히 상위 10개 종목이 반복해서 등장한다면 ETF 개수만 보고 생각했던 것보다 실제 분산효과가 작을 수도 있다.

그리고 새로운 ETF를 추가하기 전에는 질문 하나만 해보자.

“이 ETF를 추가하면 기존 포트폴리오에 없던 위험·수익 요인이 실제로 추가되는가?”

대답이 아니라면 새로운 분산이 아니라 기존 투자를 다른 이름으로 하나 더 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자주 묻는 질문

ETF를 많이 보유하면 분산투자에 더 유리한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서로 다른 자산과 위험요인에 투자하는 ETF라면 분산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비슷한 종목과 산업을 담은 ETF를 여러 개 보유하면 상품 수에 비해 실질적인 분산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분할의존성과 1/N 전략은 같은 개념인가?

관련은 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1/N은 투자 가능한 N개의 선택지에 돈을 비슷하게 나누는 단순 배분 방식이다. 분할의존성은 그보다 넓은 개념으로, 애초에 선택지를 어떻게 나눠 제시했느냐가 판단과 배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현상을 말한다. 확정기여형 연금의 단순 분산전략에 관한 연구 역시 투자 메뉴 구성이 참가자의 자산배분과 연결될 수 있음을 논의해 왔다.

분할의존성은 투자에서만 나타나나?

아니다. 연구에서는 돈의 배분, 소비 선택, 시간 배분, 주관적인 확률 판단 등 여러 의사결정 상황에서 관찰됐다. 또한 해당 분야에 대한 경험과 선호가 뚜렷할수록 영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분산투자는 몇 개의 ETF가 적당할까?

정해진 숫자는 없다. 투자목적, 자산규모, 투자기간, 세금과 비용, 각 ETF의 기초자산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ETF 개수를 목표로 하기보다 전체 포트폴리오가 어떤 자산·국가·산업·기업에 실제로 노출되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예전에는 나도 ETF를 여러 개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분산투자가 된다고 생각하기 쉬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중요한 것은 계좌에 찍힌 상품 이름의 개수가 아니라 그 상품들을 모두 열어봤을 때 결국 내 돈이 어디에 몰려 있느냐인 것 같다.

분산투자는 여러 바구니를 사는 일이 아니라, 그 바구니 안에 같은 달걀만 반복해서 들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참고자료

Fox, Ratner & Lieb — How Subjective Grouping of Options Influences Choice and Allocation

Fox & Clemen — Subjective Probability Assessment and Partition Dependence

University of Chicago — Defined Contribution Pensions and Participant Cho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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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ETF를 보유해도 같은 종목과 산업이 겹치면 실제 분산효과가 줄어드는 분할의존성 투자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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