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A주식은 +20%다.
B주식은 -20%다.
갑자기 현금이 필요해서 둘 중 하나를 팔아야 한다.
어떤 종목에 손이 먼저 갈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A주식을 판다.
“수익 났을 때 챙겨야지.”
반면 B주식은 쉽게 팔지 못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본전은 오겠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하다.
앞으로 어느 종목이 더 오를지를 판단해야 하는데, 내가 그동안 얼마를 벌었고 잃었느냐가 매도 기준이 되어버렸다.
오늘 이야기해볼 개념은 행동재무학에서 꽤 유명하지만 일반 투자자에게는 의외로 생소한 처분효과(Disposition Effect)다.

처분효과란 무엇일까?
처분효과는 투자자가 수익이 난 자산은 너무 빨리 팔고, 손실이 난 자산은 지나치게 오래 보유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말 그대로 자산을 언제 ‘처분’하느냐에 나타나는 심리적 편향이다.
예를 들어 두 종목을 각각 1,000만 원씩 투자했다고 해보자.
A주식은 1,200만 원이 됐다.
B주식은 800만 원이 됐다.
A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200만 원이라도 확정하자.”
B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지금 팔면 200만 원 손해잖아.”
그래서 A는 팔고 B는 남긴다.
그런데 주식시장 입장에서는 내가 얼마에 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A가 더 성장하고 B의 사업이 계속 악화된다면 합리적인 선택은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다.
처분효과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 개념은 행동재무학자인 Hersh Shefrin과 Meir Statman이 1985년 발표한 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후 실제 투자자들의 거래자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됐다.
왜 이런 행동이 나타날까?
여기에는 여러 심리가 섞여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손실을 확정하기 싫어하는 마음이다.
주가가 떨어져 있어도 팔지 않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아직 손실난 건 아니야.”
물론 경제적으로는 이미 자산가치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매도 버튼을 누르는 순간 실패가 확정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기다린다.
수익을 확정하면 기분이 좋다
반대편에는 수익 종목이 있다.
100만 원을 벌고 있다.
매도 버튼을 누르면 수익이 확정된다.
증권계좌에는 빨간 숫자가 사라지고 현금이 들어온다.
“이번 투자는 성공했다.”
심리적인 보상이 생긴다.
그래서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충분한 기업도 너무 빨리 팔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수익을 확정하면서 성공 경험 하나를 얻은 셈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잘하는 기업은 계속 팔고, 못하는 기업만 계좌에 남게 되는 것이다.
계좌가 점점 이상해지는 이유
처음에는 10개 종목을 샀다고 해보자.
그중 좋은 기업 세 개가 크게 올랐다.
+20%, +30%, +40%.
기분 좋게 익절했다.
반대로 네 종목은 떨어졌다.
-15%, -25%, -30%, -40%.
이 종목들은 본전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몇 년 뒤 계좌를 열어보면 재미있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잘 올라간 기업은 대부분 사라졌다.
대신 오랫동안 부진한 기업이 계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투자자는 자신도 모르게 승자를 팔고 패자를 모으는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다.
“본전만 오면 판다”가 위험한 이유
10만 원에 산 주식이 6만 원이 됐다.
투자자는 생각한다.
“10만 원만 오면 바로 판다.”
그런데 왜 10만 원이어야 할까?
기업의 적정가치가 10만 원이어서가 아니다.
그냥 내가 10만 원에 샀기 때문이다.
회사의 경쟁력이 무너지고 적정가치가 5만 원으로 떨어졌다면 10만 원이라는 가격은 아무 의미가 없다.
반대로 기업가치가 크게 성장해 적정가치가 15만 원이 됐다면 10만 원에서 팔아야 할 이유도 없다.
본전은 기업의 가치가 아니라 내 기억 속 숫자다.
배당주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배당주를 5만 원에 샀는데 4만 원으로 떨어졌다.
배당금은 계속 들어온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기 쉽다.
“배당 받으면서 기다리면 언젠가는 회복하겠지.”
물론 기업의 현금흐름이 튼튼하고 일시적인 주가 하락이라면 좋은 전략일 수도 있다.
문제는 배당 자체가 투자 논리의 붕괴를 가리는 경우다.
배당성향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부채가 증가하고 사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그래도 배당은 주잖아.”
라며 계속 보유한다.
이 역시 손실을 확정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숨어 있을 수 있다.
ETF에서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ETF라고 해서 처분효과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상승한 ETF를 보면 이렇게 생각한다.
“많이 올랐으니 일단 팔자.”
반대로 계속 떨어진 ETF를 보면,
“여기서 팔기는 너무 아깝다.”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ETF 역시 앞으로의 기대수익과 위험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단순히 내 계좌에서 수익인지 손실인지가 매도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왜 처분효과가 문제가 될까?
가장 큰 문제는 과거의 매수가격이 미래의 투자판단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투자에서 중요한 질문은 사실 하나다.
“지금 현금을 가지고 있다면 이 자산을 현재 가격에 다시 살 것인가?”
그런데 처분효과에 빠지면 질문이 바뀐다.
“나는 여기서 얼마를 벌었나?”
“얼마를 잃었나?”
완전히 다른 질문이다.
기업은 내가 수익 중인지 손실 중인지 모른다.
시장은 내 평균단가에도 관심이 없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다
보유종목을 볼 때 수익률을 잠시 가려본다.
그리고 기업 이름과 현재 상황만 본다.
매출은 성장하고 있는가?
이익은 증가하는가?
부채는 괜찮은가?
산업 전망은 여전히 유효한가?
처음 투자했던 논리가 유지되고 있는가?
현재 가격은 기업가치에 비해 매력적인가?
그다음 질문한다.
“오늘 이 종목을 처음 봤다면 나는 살까?”
YES라면 보유할 이유가 있다.
NO라면 내 매수가가 얼마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매도 기준을 가격이 아니라 조건으로 정해두자
매수할 때 미리 매도 조건을 적어두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실적 성장 가정이 깨진다.
부채가 예상보다 빠르게 증가한다.
경쟁사의 시장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경영진의 자본배분 정책이 바뀐다.
밸류에이션이 내가 정한 적정 범위를 크게 넘어간다.
이렇게 하면 수익률이 아니라 투자 논리의 변화를 기준으로 매도할 수 있다.
수익 난 종목도 다시 분석해보자
수익률 +50%.
기분 좋다.
그래서 팔고 싶다.
그럴 때도 똑같은 질문을 하면 된다.
“기업가치가 50% 이상 성장했다면?”
그렇다면 주가가 50% 오른 것이 반드시 고평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기업을 계속 팔아버리면 장기적으로 큰 복리수익을 만들어주는 기업을 보유하기 어렵다.
때로는 가장 어려운 투자 행동이 손절이 아니라 좋은 기업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속 보유하는 것일 수도 있다.
김프로 한마디
주식하면서 참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본전만 오면 판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장에서 본전이라는 가격은 나에게만 존재한다.
내가 10만 원에 샀다고 해서 시장이 10만 원까지 돌려줘야 할 이유는 없다.
반대로 내가 3만 원에 산 주식이 10만 원이 됐다고 해서 이제 그 주식이 반드시 비싼 것도 아니다.
그래서 계좌를 볼 때 수익률부터 보는 습관이 오히려 판단을 흐릴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익 난 종목을 팔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손실 난 종목은 오히려 더 냉정하게 봐야 한다.
좋은 기업을 팔아서 나쁜 기업의 회복을 기다리는 상황만큼 이상한 포트폴리오도 없다.
수익은 확정해야 내 돈이 된다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손실 역시 팔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에 샀느냐가 아니라 지금 가진 돈으로 오늘도 이 자산을 선택할 것이냐다.
가끔 계좌가 손실 종목으로 가득하다면 운이 없었던 것만이 원인은 아닐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잘한 투자는 계속 팔고, 잘못한 투자에는 계속 시간을 주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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