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10만 원짜리 물건을 사려고 한다.
그런데 직원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옆 매장에 가시면 1만 원 더 싸요.”
아마 옆 매장까지 가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10만 원에서 1만 원이면 10% 할인이니까 상당히 크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번에는 1,000만 원짜리 자동차를 산다고 해보자.
직원이 이야기한다.
“20분 거리에 있는 다른 매장에 가시면 1만 원 더 싸게 살 수 있습니다.”
어떤가?
갑자기 별로 움직이고 싶지 않다.
“1,000만 원짜리 사는데 1만 원 때문에 거기까지 가야 하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두 경우 모두 내가 아낄 수 있는 돈은 정확히 1만 원이다.
1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것도 똑같다.
그런데 하나는 크게 느껴지고 하나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이 돈을 절대금액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전체 금액에 대한 비율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걸 비율 편향(Ratio Bias)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비율 편향이란 무엇일까?
비율 편향은 실제 결과의 크기보다 비율이나 표현 방식에 영향을 받아 판단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돈에서는 특히 재미있게 나타난다.
1만 원을 절약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1만 원이다.
그런데 10만 원짜리 물건에서 1만 원을 아끼면 10%나 할인받았다고 느낀다.
반면 1,000만 원짜리 물건에서 1만 원을 아끼면 0.1%밖에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같은 1만 원인데도 행동이 달라진다.
하지만 내 통장에서는 둘 다 똑같다.
1만 원이 남는다.
사람은 절대금액보다 상대적인 차이에 민감하다
이런 현상은 행동경제학에서 다뤄지는 여러 판단 편향과 연결된다.
우리는 숫자를 볼 때 그 숫자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주변 숫자와 비교해서 판단한다.
5만 원짜리 물건이 4만 원이 되면 굉장히 싸게 느껴진다.
20% 할인이다.
그런데 500만 원짜리 물건에서 1만 원을 깎아준다고 하면 별 감흥이 없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내 지갑에 남는 돈이 1만 원이라는 사실은 같다.
이게 생각보다 자산관리에서 중요한 문제를 만든다.
자동차 살 때 옵션 100만 원이 갑자기 싸진다
자동차를 살 때 특히 쉽게 볼 수 있다.
처음 예산은 3,000만 원이었다.
그런데 옵션표를 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3,000만 원짜리 차를 사는데 50만 원짜리 옵션 정도야…”
또 하나 추가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80만 원 더 내고 상위 옵션 넣지 뭐.”
그렇게 50만 원, 80만 원, 100만 원이 계속 붙는다.
평소에 100만 원짜리 물건을 살 때는 엄청 고민할 사람도 자동차 가격 3,000만 원 옆에 붙은 100만 원은 상대적으로 작게 느낀다.
하지만 통장에서는 여전히 100만 원이 빠져나간다.
3,000만 원의 일부라고 해서 100만 원의 가치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집을 살 때는 단위가 더 커진다
부동산에서는 더 강력하다.
5억 원짜리 집을 계약한다고 해보자.
인테리어 견적이 2,000만 원 나온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5억짜리 집 샀는데 2,000만 원 정도는 써야지.”
그런데 2,000만 원은 상당히 큰 돈이다.
매달 100만 원씩 모아도 20개월이 걸린다.
하지만 기준점이 5억 원으로 올라가면 2,000만 원이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진다.
큰돈을 쓸 때 작은 돈에 대한 감각까지 함께 커지는 것이다.
주식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주식계좌에 500만 원이 있을 때 10만 원 손실은 크게 느껴진다.
-2%다.
그런데 계좌가 1억 원이 되면 하루에 10만 원 움직이는 것은 거의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운 부분도 있다.
문제는 소비에서도 같은 감각을 적용하기 시작할 때다.
주식으로 하루에 300만 원을 벌었다.
그러면 30만 원짜리 물건이 갑자기 싸 보인다.
“오늘 주식으로 번 것의 10분의 1인데 뭐.”
하지만 주식 수익 300만 원과 소비 30만 원은 별개의 문제다.
30만 원의 구매력이 갑자기 줄어든 것은 아니다.
수익률에서도 비율만 보면 착각할 수 있다
투자에서는 반대 상황도 있다.
1,000만 원을 투자해서 10% 수익을 냈다.
100만 원을 벌었다.
10억 원을 투자해서 1% 수익을 냈다.
1,000만 원을 벌었다.
수익률만 보면 첫 번째 투자가 훨씬 좋아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자산이 증가한 금액은 두 번째가 훨씬 크다.
물론 투자 성과를 평가할 때는 위험과 투자금액이 다르기 때문에 수익률이 중요한 기준이다.
다만 생활과 자산관리에서는 퍼센트와 실제 금액을 함께 봐야 한다.
운용보수 0.1%도 돈으로 바꿔보면 다르게 보인다
ETF를 볼 때도 그렇다.
운용보수 0.1%.
숫자가 굉장히 작아 보인다.
그런데 투자금이 1억 원이라면 단순 계산으로 연간 10만 원 수준이다.
10억 원이라면 100만 원 수준이다.
반대로 0.5%도 숫자만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장기간 투자하고 자산 규모가 커지면 비용의 절대금액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나는 ETF 비용을 볼 때 퍼센트만 보지 않고 내 투자금 기준으로 얼마인지 한 번 계산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카드 할부에서도 비슷하다
300만 원짜리 제품을 12개월 할부로 산다고 해보자.
한 달에 25만 원.
갑자기 부담이 작아 보인다.
“한 달에 25만 원 정도면 괜찮네.”
그런데 제품 가격은 여전히 300만 원이다.
월 단위로 쪼개면서 기준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여기에 여러 할부가 겹치기 시작하면 월급에서 빠져나가는 고정비가 상당히 커질 수 있다.
그래서 할부를 볼 때도 월 납입금뿐 아니라 총지출액을 같이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비율 편향이 위험한 이유
이 편향이 무서운 이유는 큰돈을 쓰는 순간 소비 기준까지 함께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살 때 50만 원이 작아진다.
집을 살 때 500만 원이 작아진다.
주식으로 큰 수익이 나면 30만 원 소비가 작아진다.
하지만 거래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돈은 다시 큰돈이다.
그래서 큰 금액을 결정할수록 오히려 작은 금액을 따로 떼어서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돈의 단위를 다시 바꾸는 것이다
나는 큰돈을 볼 때 이런 방법이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100만 원짜리 옵션을 고민한다면 그냥 100만 원이라고 보지 않는다.
“내가 한 달에 50만 원씩 저축한다면 두 달치 저축액이네.”
500만 원짜리 추가 비용이라면
“월 100만 원씩 모아도 5개월이네.”
이렇게 바꿔보는 것이다.
돈을 내 생활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갑자기 느낌이 달라진다.
할인도 퍼센트와 금액을 같이 보자
“30% 할인!”
굉장히 커 보인다.
그런데 원래 가격이 10,000원이라면 할인액은 3,000원이다.
반대로 2% 할인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000만 원짜리 상품이라면 20만 원이다.
그래서 소비할 때는 할인율만 보지 말고 실제로 얼마를 아끼는지를 같이 봐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할인이 없어도 이 물건을 샀을까?”
아니라면 30%를 절약한 것이 아니다.
70%를 지출한 것이다.
투자에서는 퍼센트와 원화를 같이 표시해보자
계좌에서도 도움이 된다.
수익률 +5%.
좋다.
그런데 실제로 얼마를 벌었는지도 본다.
손실률 -2%.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금이 크다면 절대금액은 상당할 수 있다.
퍼센트는 투자 성과를 비교하기 좋고 원화는 내 자산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좋다.
둘 중 하나만 보는 것보다 두 숫자를 같이 보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다.
김프로 한마디
돈을 쓰다 보면 참 이상하다.
평소에는 5만 원짜리 물건 하나 살 때도 고민한다.
그런데 자동차 계약서 앞에서는 50만 원짜리 옵션이 갑자기 싸 보인다.
집 계약할 때는 몇백만 원이 작은 돈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돈의 가치가 바뀐 게 아니다.
옆에 더 큰 숫자가 나타났을 뿐이다.
그래서 큰돈을 결정할 때일수록 나는 작은 돈을 따로 떼어놓고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전체 가격의 몇 퍼센트밖에 안 되는데?”
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확히 얼마인데?”
퍼센트는 비교하기 좋은 숫자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벌고 쓰는 것은 퍼센트가 아니라 돈이다.
큰 숫자 옆에 있다고 작은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 통장에서 100만 원은 언제나 100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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